대 인수, 대 조영의 동생인 대야발의 4세손이다.
대 조영의 직계후손들이 권력투쟁에 골몰하며 상잔하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정권을 잡았는지,
아니면 실력으로 정권을 탈취했는지는 모르나,
발해 왕가의 계보를 바꾸었고 쇠퇴기의 나라를 부흥시켜 해동성국으로 만들었다.
발해가 날 새는 줄도 모르고 권력 노름에만 몰두하고 있던 20여 년 동안,
무왕, 문왕기에 복속 되었던 세력들 중 일부는 독립하거나 반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우루, 월희, 흑수 같은 세력이 큰 말갈 부족들은 당나라에 직접 조공하였고,
요동에는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하는 세력이 자리를 잡았으며,
대동강 이북지역도 반독립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쇠퇴기에 접어든 국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선왕은 즉위하자마자 정복활동을 벌여,
호랑이 없는 산에서 왕 노릇을 하던 말갈들을 때려잡기 시작하였는데,
우루, 월희의 지역에는 군현을 설치하였고, 흑수말갈에 대한 영향력도 회복하였으며,
요동의 소고구려도 병탄하여 군현을 설치하였고, 대동강 이북지역도 회복하였다.
2년 만에 아무르 강 유역에서 요동반도, 대동강에 이르는 지역까지 평정하여, 발해의 판도를 문왕시기로 되돌려 버린 것이다.
반면 당과는 교역을 더욱 활성화하였으며,
당 헌종의 번진 토벌 시, 평로치청번진의 구원요청을 무시하는 등 군사적으로 엮이는 것을 피하고, 평화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5경 15부 62주를 완전히 정비하였다.
마치 문왕의 환생을 보는 듯하다.
군제도 개편하여 좌우삼군, 120사 및 임금을 지키는 금군인 좌우신책군 등을 설치하였다.
이는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기는 하였을 것이나,
왕의 비명횡사로 인한 정정 불안을 방지하는 효과도 분명 있었을 것이고,
대외 팽창으로 넓어진 영토에 걸맞는 군 조직을 갖춤으로서 사회에 안정감을 주기도 하였을 것이다..
재위 12년 동안 초기 2년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 동안은 내정에만 집중하였으므로,
많은 업적이 있었을 것이나, 아쉽게도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아마도 흐트러진 정치기강을 바로잡고, 반발세력을 잠재우고, 이탈 세력을 때려잡고 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었을 것이다.
그 사이 사이, 당과 일본에 사신도 보내고, 교역도 활성화 시키고, 학문도 진흥시키고, 유학생도 보내고.
창업에 버금가는 힘든 일이었을 것이나,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발해의 최전성기를 활짝 연 임금이었다. 연호는 건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