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준옹, 원성왕의 장자였던 인겸의 큰아들로서,
원성왕의 아들들이 다들 병으로 일찍 죽는 바람에 손자가 왕위를 이었다.
원성왕의 독특한 왕권강화책인 직계중용방침에 따라,
어려서부터 나랏일을 하여, 대아찬, 시중, 병부령 등을 거쳤고,
태자가 된지 3년 만인 798년에 왕위에 올랐다.
왕이 되기 전에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태자로 있던 기간도 적당하여, 나름 준비된 왕이었으나,
아버지를 닮아 몸이 약했는지 2년 만에 병으로 사망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재위 기간이 짧아 업적이랄 게 별로 없으나,
청주 거로현을 국학생의 녹읍으로 삼아 일종의 장학제도를 마련한 것이 눈에 띤다.
다들 당으로 유학을 가서 국내 교육이 공동화되는 것이 몸이 아픈 중에도 안타까웠나 보다.
그 외에는 코끼리 같은 짐승이 나타났다거나 흰 사슴, 흰 까마귀, 2m정도 크기의 인삼 발견 같은 자연 다큐멘타리류의 기사 정도이다.
800년에 왕자를 태자로 봉하고 덧없는 일생을 마쳤다.
소성왕이 너무 일찍 죽는 바람에 왕위를 둘러싼 신라 후대의 혼란이 본격적으로 막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