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립간이라는 칭호를 마지막으로 사용한 왕으로, 비처왕이라고도 불리는데,
원 발음은 비치로서, 비처로 이두식 표기가 된 것을 다시 불교식으로 고쳐 소지가 되었다고 한다.
자비 마립간의 장자로 479년 왕위에 올라,
즉위 이듬해에 말갈의 침입을 막았고, 북쪽 변경을 순시하여 방비를 다졌다.
즉위 3년째에 고구려, 말갈 연합군에게 일곱성을 빼앗기며 파죽지세로 밀렸으나,
백제, 가야와 연합군을 결성해 겨우 막아낼 수 있었다. 나제동맹 덕분에 산 셈이었다.
이듬해엔 전통의 웬수 왜구와 싸웠다.
6년에 고구려가 다시 쳐들어 왔으나, 물오른 나제동맹이 위력을 발휘하여 고구려군을 박살내었고.
8년에는 삼년산성, 굴산산성 등을 수리하였으며, 지겨운 왜구 놈들을 격퇴했다.
이듬해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신궁을 건설했다.
11년에 고구려의 침입을 또 다시 받았고 성을 빼앗겼다
12년에는 비라성을 다시 쌓았으며 시장을 만들어 물자를 유통시켰다.
15년에는 백제의 요청으로 동성왕과 결혼동맹을 맺었고
이듬해에 백제의 도움을 받으며 고구려와 싸웠다.
다음해에는 반대로 고구려의 공격을 받은 백제를 구원했다.
18년에도 고구려의 공격을 막았고.
19년에는 왜구의 침입은 막았으나 고구려에게 우산성을 빼앗겼다.
22년 왜구의 공격에 장봉진을 빼앗겼고
그 와중에 미인 ‘벽화’를 후궁으로 맞이하였으나, 몇 달 뒤에 서거 하였다.
거센 파도와도 같은 고구려의 공세를 나제 동맹에 의지해 겨우 겨우 막는 동안,
전통의 원수 왜구의 공격도 끊이지 않아 소지왕은 거의 매년 전쟁을 하여야 했다.
비록 할아버지가 남긴 나제동맹에 힘입은 바 크다 하나,
당대의 신화 같은 장수왕의 인생 마지막 대공세를 비교적 선방하며 나라를 지켜낸,
소지왕의 업적 또한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위, 아래로 시달리며 위기를 넘기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실업자 대책을 세우고 유통을 장려하여 경제 부흥을 유도하는 등 경제적 식견 또한 남달랐다.
소지왕은 수컷 역할에도 충실하였는데, 알려진 후궁만 아홉으로 그중에는 이복동생도 있었다고 한다.
고대 왕가의 족보는 원래 개족보라지만 신라는 좀 더 심했던 듯하다.
이 양반의 업적 중엔 신궁의 설치도 있는데,
이전의 시조묘 제사가 왕실뿐 아니라 여러 세력의 장들이 다함께, 국조이자 천신인 혁거세왕에게 올리는 제사였던 반면,
신궁은 시조의 탄생지에 설치한 김씨 전용 사당 같은 것으로서,
정통성의 독점을 노린 의미가 있었다.
또한 신궁의 무녀는 대대로 김씨 왕실의 씨받이가 되어 김씨 족벌체제에 기여하였으며,
후대에 미실 같은 여걸이 탄생하는 요람이 되었다.
* 사금갑 설화
재위 10년째에 있었던 이야기라 한다.
왕이 신궁에 거동하였을 때 사람 말을 하는 쥐가 나타나서, 건방지게도 까마귀를 따라가라고 명령을 하였고,
시종에게 따라가게 하자, 연못에서 웬 노인이 나타나 편지를 전해 주었는데,
겉봉에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한다.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한 사람만 죽는 게 낫지 않겠나 싶었으나,
그 한 사람이 왕이라는 소리에 식겁하여 열어보니, `사금갑` 즉 거문고 갑을 쏘라고 적혀 있었다 한다.
왕이 궁에 들어가 시키는 대로 하자,
거문고 갑 안에서 숨어있던 중과 궁주가 튀어나왔다 하는데, 둘이 그 안에서 뭔 짓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죽여 버렸고,
그 이후 15일을 오기일이라 하고 찰밥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한다.
이것이 오늘날 정월 대보름날 약밥을 먹는 풍속의 유래가 되었고,
노인이 나타나 편지를 전해주었다는 연못을 서출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설화는, 신라의 전통적인 토속 신앙과 불교 사이의 갈등을 의미한다고도 하고,
불교의 수용을 둘러싼 신라 왕실과 귀족 집단 간의 대립을 나타낸다고도 하고,
김씨 왕족 내부의 소지왕과 그 반대 세력간의 암투,
또는 신궁 설치와 관련된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는 등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신궁은 제 세력들의 연합을 상징하는 시조묘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세워진,
김씨 독점의 성지였기 때문에 이를 고깝게 생각한 다른 귀족들이 당연히 있었을 것이고,
사금갑 설화는 당시의 불안한 사회상을 반영한 설화라는 설이 가장 끌리기는 하지만,
그 누가 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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