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벌휴, 발음하기도 힘든데,
이두식 표기이므로 당시 발음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석씨의 재등장으로, 탈해 이사금의 손자라 하는데,
나이가 100살 이상 차이가 나니 친손자로 보기에는 무리이고,
아달라 이사금이 아들이 없어 뒤를 이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박 벽방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이 분의 둘째 아들과 선대 왕의 왕비인 내례 부인이 정을 통하여 아들을 낳았다는 망칙한 기록도 있고,
이래저래 즉위 과정이 석연치 않다.
184년 왕위에 올라, 이듬해에 소문국을 정벌하였고,
제위 4년과 5년엔 백제와 싸워 이겼으나, 다음 해엔 졌으며,
9년째엔 왜인 1천여 명이 기아를 피해 신라로 들어왔다고 한다.
12년 간 재위했는데 업적이 이 정도밖에 없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일식의 기록이 3번이다.
왕권의 불안정했음을 시사한다 하겠다.
이 양반은 점을 잘치고 사람의 선악을 잘 판단하여 성인으로 불렸다는 것으로 보아,
본업이 신관이었던 것 같은데,
신관이 왕이 되었다는 것은 남해 차차웅처럼 위기관리를 위해 투입된 것일 수도 있으나,
신라가 아직 후진적인 사회였다는 것 또한 시사한다고 하겠다.
탈해왕 이후 석씨가 신관 계급을 맡아왔던 것으로 보이는데,
기록이 없으므로 나름대로 추정을 해보면,
아달라왕 시기에 뭔가 박씨계에 엄청난 손실이 있었고,
그 틈을 이용하여 석씨가 김씨와 손을 잡고, 내례 부인으로 상징되는 일부 박씨들을 끌어들여 왕위를 찬탈한 것이 아닐까?
벌휴왕의 어머니가 김씨라 하니 전혀 근거 없는 추측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