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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年 11 月 22日 10:25 下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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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설/칼럼고구려 : 부흥운동

고구려 : 부흥운동

부흥운동

위대한 고구려는 그냥 죽지 않았다.
유민들은 안시성, 요동성, 신성 등을 중심으로 계속 저항하였는데,
지금까지 고구려를 지켜왔던 이 위대한 성들의 주민들은,
저 철없는 연가네 3형제 따위가 말아 먹을 수 없는, 진정한 고구려인들이었고 고구려의 혼이었다. 

여러 갈래의 부흥운동 중 대표적인 것은 검모잠과 안승의 부흥운동이었다.
검모잠은 670년 궁모성에서 군사를 일으킨 후 황해도 방면으로 이동하여,
왕족인 고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추대하였고, 이어 신라에 도움을 청하였다. 
당시 신라는 나당 전쟁을 수행 중이었으므로, 안승을 고구려왕에 봉하고 고구려 부흥군을 지원하였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 것이다. 

당은 안승의 부흥군을 제거하기 위해 움직였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던 중 의견이 갈리면서 안승이 검모잠을 살해하였다.
똘똘 뭉쳐 싸워도 될까 말까한데, 이 꼬라지면 될 일도 안 되므로,
안승은 결국 신라로 날랐고 이로써 고구려 부흥운동은 사실상 끝이 났다. 

투항한 안승은 보덕국왕에 임명되었고
매소성 전투에도 참여하여 공을 세우는 등 신라에 적극 협력하여 진골 대우를 받았는데,
이는 이후 고구려계가 백제계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게 하는데 공헌하였다.
그리고 이 고구려계는 나중에 왕건이 고려를 세우는 기반이 된다.

당나라로 압송었던 보장왕도 부흥운동을 벌였는데 비록 사전 발각되긴 하였으나,
그 후예가 요동에 소고구려를 세워 고구려의 명맥을 이어 나갔다는 설이 있다.

안승과는 별도로 만주에 잔류했던 고구려인들도 반항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발해의 건국으로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김경순
김경순
실존은 본질보다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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