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는 연불,
동천왕의 맏아들로 태자를 거쳐 왕 되기 딱 좋은 나이인 25세에 아버지의 뒤를 이었는데,
즉위하자 마자 동생들의 반란을 만났다.
아마도 동천왕 시기에 위나라와 항쟁하면서 다른 왕자들도 나름의 지분을 확보했던 모양이나,
별 호응을 못 받았는지 바로 진압되어 처형되었다.
형제들의 피로 치세를 시작하여,
즉위 3년 째, 국상의 권한을 강화하였고,
다음 해에는 왕비를 투기하여 모함한 후궁 관나 부인을 가죽 주머니에 넣어 바다에 던져버렸다.
상당한 미인이었다는데,
단호한 성격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일화라고 하겠다.
이후 별 눈에 띠는 일 없이 살았는데, 즉위 11년째에 위기가 찾아왔다.
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위나라가 쳐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성격답게 직접 기병 5천을 인솔하여 양맥에서 이들을 격파하였고,
8천여 명의 목을 베어 예전에 위나라에게 당했던 수모를 되갚아 주었다.
그 이후로 한 10년 별 탈 없이 지내다 270년 서거하여 중천의 들에 묻혔다.
향년 47세, 재위는 22년 1개월.
부자 상속의 정착은 중요한 정치적 발전이기는 하나,
빛에 따르는 그림자처럼,
이전 계승 1순위였던 형제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이 컷을 것이고,
성장한 왕자들의 왕위 계승 경쟁이 격화될 소지 또한 충분히 있었다.
골육상쟁의 비극은 동서고금에서 역사적으로 되풀이 된 왕가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므로,
이제 막 부자상속의 첫 걸음을 뗀 고구려가 이를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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