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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문화'작은 것을 쫓다 큰 것을 잃는다.' 모택동과 참새일화

‘작은 것을 쫓다 큰 것을 잃는다.’ 모택동과 참새일화

사진=우리역사바로잡기 시민연대 제공

[수완뉴스=역사] 우리역사바로잡기 시민연대, 중국은 중일전쟁, 국공내전, 한국전쟁 등 장기간 전쟁을 겪으면서, 경제 침체기에 빠졌다.

 1949년, 모택동은 중국 인민의 지지를 받아, 국민당을 중국 대륙에서 몰아내는 쾌거를 이뤘다. 중국 인민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던 모택동, 그는 항상 경제안정책을 강조했고, 1950년 이후 식량 확보와 증대를 위해 고심했다. 하지만 1958년~1962년, 이 기간에 무려 4천만 명의 중국인이 아사하는 충격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때는 1958년, 모택동(마오쩌둥, 毛澤東, 1893~1976)은 식량 증산계획을 위해 농촌을 방문했다. 모택동은 참새가 벼 낟알을 주워 먹는 것을 보고, 참모들에게 참새를 가르키며 말했다. “참새가 쪼아먹는 쌀알만 지켜내도 수확량은 증가한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대대적인 참새 박멸운동에 들어갔다. 모택동의 말 한마디에 참새 박멸 명령이 전국에 하달된 것이다. 농민들에 의해 참새는 씨가 마를 정도로 죽임을 당했다. 전국서 무려 20.1억에 달하는 참새가 박멸되었다.

사진= 우리역사바로잡기 시민연대 제공

 참새가 사라지자 그 자리에는 병충해가 자리했고, 모택동의 예상과 달리 흉년을 거듭됐다. 극심한 흉년으로 식량을 확보하지 못했고 그 결과, 1958년~1962년, 이 기간에 4천만 명이 굶어 죽게 되었다. 작은 것을 쫓다 큰 것을 잃은 셈이다. 중국 정부는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다방면으로 연구했고, 그 결과 참새의 개체 수가 급감해, 논의 병충해가 급증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1959년, 과학원 당서기 장진푸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모택동에 서면 제출했고, 1960년대에 와서야 참새 박멸운동은 중단됐다.

 참새가 병충해를 막아준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지도자의 판단 실수로 무려 4천만 명이 굶어 죽었다. 이 숫자는 중일전쟁 사상자보다 많다는 점에서 지도자의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글, 우리역사바로잡기 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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