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공영방송 파업 6주차. 이번 공영방송 파업은 9년전 파업과는 새삼 다른 분위기다. KBS, MBC 기자들도 단단히 마음을 먹었는듯 고대영 KBS 사장과 김장겸 MBC 사장을 당장이라도 사퇴시키려는 분위기다. 아마도 지난 보수정부를 향한 국민들의 분노가 공영방송으로도 이어진 모양이다. 정권을 위한 공영방송이 아닌 국민을 위한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만들고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남편을 위해 아내들의 편지가 지난 기자협회보를 가득 매웠다.
이형은씨(김민식 MBC PD 아내)
“우리 아이들에게 사람은 안락한 잠자리와 먹을거리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고, 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어 다행이야.”
예전에 당신이 ‘내조의 여왕’을 연출할 때, 라디오를 틀어도 TV를 켜도 온통 당신 프로그램이 나오고 얘기되니 참 비현실적이다 생각했는데, 요즘 그 데자뷔를 경험하는 것 또한 참 비현실적이야. 출근길에 김현정의 뉴스쇼를 듣고 있으면 당신 얘기가 나오고 또 당신이 출연하고, 회사 사람들이 당신 작품이 아니라 당신의 페북 라이브를 얘기하고 당신을 응원한다고 할 때는, 이 사람이 내가 연애하고 결혼했던 딴따라 김민식이 맞나, 예전 TV 드라마 <브이>에 나오는 외계인들처럼 겉만 김민식이고 속은 파충류가 들어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어.
생각해보면 그 김민식과 지금의 김민식이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지. 그 김민식이나 지금 김민식이나 공통점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참 미친 듯이 열심히 한다는 거야. 그 열심히 하고 좋아하는 일이 주식, 부동산 대박이 아니어서 다행이야……….. (중략) ………… 안락한 잠자리와 먹을거리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기꺼이 자기를 던져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우리 아이들은 양심적인 세계시민으로 클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당신이 두 딸의 아버지로, 또 한 여성의 남편으로, 양성평등을 안팎으로 몸소 구현하는 남성이 되었으면 해. 그러려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는 김민식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할 일을 하는 김민식이 되어야겠지. 당신이 힘든 일을 끝내고 몇 달씩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것은 멋있음의 표본이 아니라 부인에게 독박육아를 짐 지우는 일임을 알고, 아이를 보러 집에 일찍 들어가야 하는 것은 창피해야 할 일이 아니라 당당하고 자랑스러워야 할 일임을 체화해 낸다면, 당신을 응원하는 82년 김지영들은 바깥에서 보여지는 김민식만이 아닌, 김민식이라는 온전한 인간을 열렬히 응원할 수 있게 될거야. 그날이 온다면 당신은 너무도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되겠지만, 괜찮아. 당신은 동남아 사람처럼 생겼으니까!
김서영씨(최준혁 KBS 기자 아내)
“당신이 꿈꾸던 지난 시간처럼, 누군가의 꿈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마이크를 들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기도하고 응원한다. 힘내라, 자기야. 사랑한다, 쭌아.”
매년 기념일마다 자기에게 편지를 받으면서, 정작 나는 참 오랜만에 자기에게 편지를 쓴다.
이번 추석 연휴는 참 즐거웠어. 온 가족이 동물원도 가고 맛있는 음식 먹으며 웃음이 넘치는 시간을 보냈었지. 단 하나, 자기가 부모님과 이야기 도중 ‘저 같은 쓰레기를 누가 받아줘요’라고 말한 순간을 제외하고. 아들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 부모님의 마음이 어떨지 어머님, 아버님의 심중이 걱정되면서도 저런 말을 쉽게 꺼낼 수 있게 되기까지 지난 7년이 자기에게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구나 라는 생각에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가난하더라도, 남 보기 부끄럽지 않게 우리 식구 행복하게 살자 했는데, ‘쓰레기’라는 말속에서 남들에게 숨기고 싶던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짓눌린 자존감을 내가 본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다.
24살의 학생 신분으로 만나, 서로가 원하던 꿈을 이루었음에도, 행복하지 않은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보다 자긴 오죽 힘들었을까. 앞이 보이지 않아 불안함이 가득했지만 설렘 또한 가득했던 그때에 비해, 우린 지금 그때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도 마음 한편은 더 외로워진 거 같아.
혼수로 해온 TV를 보며 많은 눈물을 흘렸던 아픔의 2014년 봄. 겪은 이도 지켜보던 이도 크나큰 아픔이고, 충격이었기에 어느 때보다 살을 아리는 바닷바람을 맞을 자기가 난 많이 걱정되었다. 슬픔을 겪는 이를 지켜보는 것도 고역임을 자기와 함께 10년을 보낸 내가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 후에도, 당신의 이름이 붙은 텍스트가 당신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멍이 되었고, 3년이 지난 지금도 생채기로 남아 주기적으로 통증을 호소하는 자길 보면서… 살아갈수록 사는 게 무섭고 어렵다는 어른들의 말씀들이 떠오른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른 선택이 있었을까 라는 내 질문에, 속상함과 슬픔으로 가득했던 자기의 눈빛은 나만이 알겠지.
트렌치코트에 온 마이크를 들고 있던 방송기자를 보며 꿈을 키웠던 자기. 자기가 좀 더 공부를 잘했더라면, 지금의 우리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결국에는 기자가 되었을 거라며 농담처럼 진심을 보이는 자기. 그토록 간절했고 갈망했던 기자가 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나 또한 뛸 듯이 기뻤는데…(실제로 전화통화 받으며 폴짝폴짝 뛰었단 건 비밀!) 생각과는 너무도 다른 현장 모습에 연거푸 좌절을 거듭하고 자신을 부정하는 지금의 모습이 된 거 같아서 정말 우리 모두에게 좋은 직장인지 의심이 들 때도 있었어. 당신도 참 꿈 많고 자신감이 가득했던 20대 청년이었는데 말이지.
다시 24살의 설렘을 품을 수 있는 기자가 되길! 좌절이 아닌 보람을 맞볼 수 있는 일터가 되길! 내일은 더 행복해라~ 주문을 외울 당신이 되길! 당신이 꿈꾸던 지난 시간처럼, 누군가의 꿈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마이크를 들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기도하고 응원한다. 힘내라, 자기야. 사랑한다, 쭌아.
한국기자협회 (2017년 10월 11일 링크)